평생 차를 소유하지 않고 검소했으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많은 이들을 도우며 살아왔던 큰 부자. 김장하 선생님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인터넷을 보다가 요즘 화재가 되고 있는 영화가 있다란 내용의 글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제목을 보고는 '참, 제목 잘 지었다'란 가벼운 감탄을 했었고, 김장하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서칭을 하고는 끝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지나가는 말로 이런 사람이 있더라고 한다면 거짓말이라 믿었을 만큼 제 상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큰 사람. 그 위대함의 빙산의 일각이라도 알 수 있게 해주는 영화 <어른 김장하>를 어느 날 넷플릭스에서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요 꼭 보셔야 합니다. 정말 주변사람들에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2부작으로 된 다큐가 끝나는 게 아쉬워 3부가 있지 않을까 다시 찾아봤던 작품. <어른 김장하>를 소개합니다.
- 감독 : 김현지
- 제작 : MBC경남
- 장르 : 인물 다큐멘터리
- 러닝타임 : 105분 (1시간 45분)
-개봉 : 2023. 11. 15
- 등급 : 전체 관람가
- 수상 : 제59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교양 작품상
평생 남을 돕는데 자신의 생을 바쳐왔으면서도 자신의 선행에 대한 질문에는 입을 닫아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경남 진주에서 한약방으로 부를 이룬 김장하 선생님입니다. 이분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물려받은 게 많아 사회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을 갖고 있는 의식 있는 부자일 거라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습니다. 선생님은 순수하게 자수성가를 이루신 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운영하셨던 진주의 남성당한약방은 손님이 항상 어마어마하게 많았다고 합니다. 약효가 좋은 데다 값이 저렴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직원들 급여는 다른 한의원의 3~4배를 주셨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버신 것이지요.
이제 선생님은 번 돈을 가지고 주변을 돕기 시작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대주는 일을 과감하게 시작합니다.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학교에 몇 십 명씩을 지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 정도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하기 어려운 일일 텐데요. 왜 그러셨을까요? 워낙 본인이 하신 일에 대해서는 말씀을 안 하시니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영화에 나오는 한 인터뷰 영상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번 돈은 아프고 어려운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그런데 그 돈으로 내가 호의호식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세상에나. 도대체 누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걸 평생을 지속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남에게 베푼 게 있으면 자랑을 하고 싶고 알아줬으면 하는 게 사람의 마음인데 어떻게 그걸 숨기셨을까요. 저는요. 남에게 티끌만 한 도움이라도 주게 되면 그걸 꼭 인정받아야 속이 풀리는 사람입니다. 그걸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다르셨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큰 선행을 많이 하셨는데도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불교에서 유래된 말 '무수상보시( 無住相布施 )'. 나와 남이 한 몸이라는 마음. 내가 주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않는 기부. 평생 선생님 해오신 일들은 바로 그 진리와 닮아 있었습니다.
젊으셨던 김장하 선생님은 아예 학교를 지어 (명신고) 교육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물론 많은 사립학교들과 다르게 선생님은 돈을 벌기 위해 학교를 지은 것이 아니었죠. 그리고는 직접 이사장이 되어 학교 운영도 하셨는데요. 그 학교를 나온 학생들은 훌륭한 이사장님을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사장님은 존경한다는 이야기가 너무 낯서네요. 전 교장선생 욕하고 다니느라 바빴는데 말이죠. 선생님의 영향으로 사회에 나와서도 선한 일을 하는 졸업생들의 이야기도 약간 소개됩니다. 참 훈훈한 장면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후 학교를 공립으로 전환하시고 조용히 다른 여러 활동에 참여하시게 됩니다. 어려운 지역의 예술인, 문인들을 위한 행사를 후원하시고, 뿌리 깊고 의미 있는 지역의 일들을 지원하십니다. 언제나처럼 묵묵히 자신을 숨기시며 말이지요. 선생님은 드러나지 않은 활동도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밝혀진 일들을 보면 담당하는 사람에게 절대로 비밀을 지켜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고 하니 아마도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일들이 부지기수 일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는 가슴 아픈 장면이 나오는데요. 바로 선생님께 욕설과 막말을 쏟아붓는 사람과 하는 통화 장면입니다. 선생님이 민족문제연구소를 지원했다는 걸 알고 항의를 한 것이었는데요. 말투는 불손하기 그지없고 내용은 더 막장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별말씀을 하지 않고 '전화 끊습니다'라고 하시며 통화를 끝내십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이런 훌륭한 분을 품기에는 너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분을 세상이 그만 둘리 없었겠죠. 많은 분들이 찾아가고 만나 뵙고 싶어 하고 좋은 자리를 권유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다 거절하시고 예전처럼 조용히 지내십니다. 선생님에 대해 알고 계셨던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시절 미리 약속도 안 하고 (연락해도 안 만나 줄 테니) 불쑥 찾아가신 적이 있으셨다는데요. 오신 노대통령을 마다 못하시고 함께 차를 함께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셨답니다. 노대통령께서 무척 만족하셨는데, 취임 이후 식사하여도 한번 하자고 연락을 했더니 단칼에 거절하셨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가장 인상적인 었던 사회인물로 노무현 대통령을 뽑으셨으면서도 그렇게 하셨다는 게 얼마나 높은 경지의 인물인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과연 내 주변에는 저분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람이 있는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아니, 남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제가 한 터럭이라도 저 분과 닮은 게 있는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한없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영화에서는 작품의 제목을 '어른'이라고 붙인 것에 대해 '사람들이 닮고 싫어하는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 아니겠는가'라고 이야기합니다.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시대에 진정한 '어른' 김장하 선생님이 부디 행복한 삶을 이어가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영화에서 나왔던 감동적인 선생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돈이라는 게 똥과 같아서 모아두면 악취가 나는데 밭에 뿌리면 좋은 거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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