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유대인으로서 끔찍했던 홀로코스터를 몸소 겪어내고, 결국 살아서 해방된 개인적 경험담을 정리한 책입니다. 하지만 그 상황을 이런이런 것들로 버텨내었다는 성공담이나 인류애적인 감동적 에피소드들을 정리한 책은 아닙니다. 정신과 의사였던 작가는 인간의 심리와 행동패턴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고 매우 유머러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수감자들과는 달리 절망과 두려움에만 빠져있기보다는, 그 지옥 같은 상황을 견디면서도 사람들을 관찰하며 자신의 학문적 연구를 진행하게 됩니다. 약간은 <인생은 아름다워>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영화와 달리 감동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런 상황을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지 라는 신비감, 경외감이 드는 것은 공통적인 것 같습니다.
2. 이 책은 저에게는 조금은 충격적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아우슈비츠의 일상을 기술하면서 작가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의 이기적인 심리를 매우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지요. 작가는 기본적으로 매우 선하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인 어려움이 닥쳐올 때는 다른 수감자들과 같이 냉철하게 변하기도 합니다. 몇 분 전까지 본인이 살펴보던 환자가 갑자기 죽었고, 시체가 된 그 사람이 버려진 물건처럼 폐기되기 위해 끌려가는 모습을 창문 밖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바로 눈앞에서 죽은 시체의 눈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작가는 놀라거나 그 사람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끼기보다는 오늘의 배고픔은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지 하는 걱정을 했다고 숨김없이 그대로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충격적인 자기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극단적 상황에 빠진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을 매우 솔직하게 보여줍니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p.353>
3. 작가는 자신에게 솔직한 만큼 타인에게도 솔직합니다. 물론 유대인들이 절대적으로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것은 재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수용소에서 벌어진 일들을 설명하며, 그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이기적인 행동들과 욕심, 어리석은 욕망들을 태연하게 설명해 줍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책이 너무 무겁고 우울할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빅터 프랭클 박사는 객관성과 유머를 잃지 않기 때문이지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극한의 상황으로 몰리는 수용소 생활.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노동에 시달리며 먹을 음식은 부족하고 매 순간 죽음의 공포를 느낍니다. 당연히 아침에 눈을 뜨는 게 쉽지 않지요. 하지만 어느 날 그는 번쩍 눈을 뜨게 되는데요. 바로 위층에서 자던 동료 때문입니다. 저 같으면 짜증에 짜증을 내고 심하면 삶을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겠다 싶은 그 순간을 작가는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기록합니다.
위 침대에 있던 사람이 신발을 신은 채 내 배 위로 뛰어내렸다.
그 덕분에 나는 잠에서 완전히 깰 수 있었다. <p.181>
4. 작가는 수용소 기간 동안 견뎌내고 살아내는 와중에서도 인간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계속하였고, 그것이 그가 지옥을 버텨낼 수 있게 해 준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는 저명한 학자가 되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정말이지 인간승리의 표본이라 할 만합니다. 작가는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곧 죽음을 불러온다고 했는데요. 수용소 내에서도 어떤 사람이 갑자기 자포자기한 행동을 하면 다른 이들조차 '저 사람은 얼마 못 가겠구나'라는 이야기를 해댔고, 결국 조만간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삶을 이어가야 하는 의미를 잃은 사람들이었죠. 새삼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되는 부분입니다.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들은 희망의 이유를 갖고 있었다. 건강, 가족, 행복, 전문적인 능력, 재산, 사회적 지위 등 모두 나중에 다시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때 나는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237p>
5. 책의 후반부는 '로고테라피'라는 정신치료 학파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빅터 플랭클 박사가 창시한 분야로 정신치료에서는 꽤 영향력이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번역하신 분도 이 부분을 공부하시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하지만 전 잘 모르겠더라고요. 아마 제 수양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쉽지 않은 건 사실이라 저 같은 일반인들이라면 그냥 넘어가셔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로고테라피가 나오기 전인, 전반부는 꽤 흥미롭고 기억에 남을 장면이 많은 괜찮은 책이었습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유대인들은 수용소에서 어떻게 지냈고 어떻게 살아남았는가에 대한 궁금함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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