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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줄리뷰

[다섯줄리뷰] 골든아워 1,2

by 궁금증환자 2024.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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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저는 이국종 교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구해낸 분이고, 재미있게 봤던 <낭만닥터 김사부>의 실제모델로도 알려져 있었으니까요. 가끔 TV나 유튜브에서 강연하시는 모습도 볼 수 있었으니 아주 잘 나가는 의사 중 한 분이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죠.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사실 이국종 교수님은 수행자와 같은 고달픈 인생을 사신 분이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견디며 성과를 만들어오신 극한의 끈기를 가진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책을 다 읽은 지금, 이전보다 큰 존경심을 느끼면서도 어느 정도의 안쓰러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목마른 사람. 두 마디의 말이 불러오는 바람이 씁쓸했다. 나는 내 목마름의 근원을 알지 못했다. 내가 왜 이런 기갈과 허기를 느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목말라해야 하는지, 중증외상센터 사업을 받아 진행하는 것이 내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2. 책은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를 기록한 책이 1권, 그 이후 2018년까지가 2권입니다. 놀랍게도 이 책은 이국종 교수님이 직접 기록한 것을 정리한 것인데요. 그 대쪽 같은 성정상 절대 대필 작가는 쓰지 않으셨을 테니, 그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많은 기록을 남기셨다는 것아 참 대단합니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교수님의 문학적 소양입니다. 설명하고자 하는 상황에 대한 묘사가 무척 뛰어나고요. 그 상황에 대해 느끼는 본인의 심정을 기록하는 경우가 많은데, 뭐랄까 시적이라고 할까요. 암튼 범상치 않은 분입니다. 

비루한 말들을 그러모아 문장을 써 내려갈 때 펜 끝은 방향을 자꾸 잃었다. 팔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흔들리는 팔을 달래며 한 자씩 겨우겨우 써나갔다. 

 

 

3. 교수님은 아덴만의 여명작전으로 유명한 석해균 선장을 구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훨씬 전부터 많은 일들을 해오신 분이었습니다. 특히 국내에는 정착하지 못하던 외상외과를 위해 많은 헌신을 하셨지요. 꼭 필요한 일이고 교수님 말고도 의지를 갖고 있었던 정부, 정치, 의료계 인사들이 있었는데도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석해균 프로젝트를 겪으면서 그가 원했던 건 선진국형 항공이송 시스템의 도입과 정착이었습니다. 요약하자만 '긴급환자가 생기면 가장 빨리 환자에게 접근할 수 있게 헬기를 이용한다. 그리고 처치를 하면서 병원으로 빠르게 데려온다. 그 과정에 생기는 일들은 합리적으로 해결한다'는 건데요. 이 당연한 일이 왜 그토록 힘들었고 지금도 완전치 못한 지는 책을 보면 절절하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회의석상의 누구도 환자 항공 이송에 도움이 될 것에 대해 논하지 않았다. 아무도 선진국형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오로지 외상센터 사업이 풍기는 돈 냄새만이 중요했다.

 

 

4. 책에서 교수님은 냉소적이지만 간결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합니다. 무언가 작심하고 발언하는 사람처럼 결기도 가득합니다. 그 치열한 과정을 견뎌내며 우리나라의 응급의학에 한 축을 구축해 냈지만 자기 자랑 같은 건  없습니다. 그저 본인에게 주어진 과업을 달성할 수 있게 해 준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을 많이 표현했고, 함께 환자들을 구한 해병들과 헬기 기장들에 대한 미안함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현장의 절박함이 윗대가리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것은 병원도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 누군가에 대해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많은지 속이 상하더군요. 물론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는 너무 심사숙고를 하는 그의 우유부단함에 속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비판은 통렬하지만 거기에 대한 대안을 제안하기보다는 그저 홀로 침전하는 것 같아 실망스럽기도 했고요. 하지만 아주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전체적으로 교수님은 칭찬받아 마땅한 사람이니까요.

내가 외상센터라는, 한국에는 정착할 수 없어 보이는 괴이한 일을 할 때마다 나와 연관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문제를 알고도 그만두지 못했고, 문제의 본질이 다른 곳에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은 내 권한 밖의 일이었으므로, 나는 늘 진퇴양난 속이었다.

 

 

5. 결국 교수님은 한쪽 눈이 실명될 정도로 건강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끝내 의사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으셨지요. 그 치열한 상황들과 고뇌를 끝으로 책을 마무리가 됩니다. 현재는 국군대전병원장으로 임명되어 (23년 12월) 또 다른 역할을 하고 계시는 중이라고 합니다. 세월호 사고에서도 헬기로 출동한 후 접근하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를 무시한 채 가라앉고 있는 배 위를 돌며 무엇이라도 하려 하려 했던 교수님이라면, 그저 평범한 병원장으로 편안한 노후를 보내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고생 많으신 분께 이런 말씀드리기 송구하지만, 교수님 또 수고 좀 해주십시오. 그리고 감사합니다. 

대부분의 출동에서 병원으로의 복귀 비행은 환자를 처치자며 오느라 늘 피가 타들어간다. 그래서 가끔 있는 이런 편안한 비행은 몹시 비현실적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부담이 없었다. 창밖의 겨울 풍경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나는 그 순간을 머릿속에 오래, 깊이 박아 넣고 싶었다. 

 

 

 
골든아워 1
외상외과 의사 이국종 교수가 대한민국 중증외상 의료 현실에 대한 냉정한 보고서이자, 시스템이 기능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생명을 지키려 애써온 사람들의 분투를 날 것 그대로 담아낸 『골든아워』 제1권. 2002년 지도교수의 권유로 외상외과에 발을 내딛으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저자는 대한민국에 국제 표준의 중증외상 시스템을 정착하기 위해 지난한 싸움을 했고, 17년간 외상외과 의사로서 맞닥뜨린 냉혹한 현실, 고뇌와 사색, 의료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 등을 기록해왔다. 이 책은 저자가 외상외과에 발을 내딛은 2002년에서 2018년 상반기까지의 각종 진료기록과 수술기록 등을 바탕으로 저자의 기억들을 그러모은 기록으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사선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환자와 저자, 그리고 그 동료들의 치열한 서사이기도 하다. 사고 현장과 의료 현장을 직접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절절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고심했고, 한 단어 한 문장 심혈을 기울여 써내려간 이 책을 통해 현장을 겪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입체적인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제1권에서는 외상외과에 발을 들여놓은 후 마주친 척박한 의료 현실에 절망하고 미국과 영국의 외상센터에 연수하면서 비로소 국제 표준의 외상센터가 어떠해야 하는지 스스로 기준을 세워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생사가 갈리는 위중한 상황에 처한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의 통렬한 심정 등 우리네 세상의 다양한 면면이 펼쳐진다. 무엇보다도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부상당한 석 선장을 생환하고 소생시킨 석 선장 프로젝트의 전말은 물론, 전 국민적 관심 속에 중증외상 치료 시스템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고도 소중한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대한민국의 의료 현실을, 슬픔을 꾹꾹 눌러 담은 담담한 어조로 묘사한다.
저자
이국종
출판
흐름출판
출판일
2018.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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