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리뷰

[책리뷰] 기사단장 죽이기_무라카미 하루키

by 궁금증환자 2026. 7. 2.
반응형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선사해 주는 문제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제가 가장 좋아하면서도 어려워하는 작가입니다. [노르웨이의 숲]을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강렬함에 휩싸여 [댄스 댄스 댄스], [태옆감는 새] 같은 몇 개의 작품을 더 찾아 읽었지만, 읽을수록 미궁에 빠지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하루키만의 간결한 문체와 비교할 수 없는 신선함은 언제나 충분한 만족감을 주었기에, 가끔 제가 글을 써야 할 순간이 오면 마치 문제지의 정답 페이지를 미리 엿보듯 하루키의 책을 읽었고, 그 문체를 흉내 내며 글을 쓰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업무적으로 중요한 장문의 글을 써야 하는 사정이 있었고, 도서관에서 하루키의 책만 뒤지다가 읽지 못했던 이 작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하루키 문학의 가장 큰 매력은 평범한 일상 속에 갑작스레 스며드는 '기묘한 판타지'라고도 합니다. 특히 이번 작품인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그의 문학적 특징이 극대화 되었죠. 쉽게 말하자면 이야기가 아주 자연스럽게 진행되다가 갑자기 황당한 사건이 계속 튀어나온다는 겁니다.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읽는 도중에 이제 관둘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왠지 모를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들이 저를 계속 붙잡았고 결국 끝까지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하루키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락방의 낡은 그림, 그 기묘한 여정의 시작

이 소설은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대를 졸업하고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초상화 방면에서는 꽤 평판을 쌓아가던 평범한 초상화가인 주인공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받게 됩니다. 그리고 폭풍과 같은 방황을 하게 되죠. 그러던 중 대학동창의 아버지였던 유명한 일본화가 야마다 도모히코가 살았던 낡은 집에서 당분간 지내게 되는데, 이때 우연히 다락방에 숨겨진 미발표 작품인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그림을 발견한 후 주인공의 일상에 파문이 일기 시작합니다. 저택의 맞은편에 사는 백발의 젊은 부호 '맨시키'가 거액의 초상화를 의뢰해오기도 하고 (이 인물에 대한 많은 의문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소설이 마무리 됩니다) 한밤 중 뒷산 사당에서 울리는 희미한 방울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림 속에 존재하던 '기사단장'이 신장 60cm의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며 자신을 '이데아'라고 하게 되죠. 그리고 계속되는 이상함과 평범함의 일상을 지내던 주인공은 '맨시키'의 딸로 추정되는 이웃집 소녀 마리에의 실종을 계기로 현실을 넘어 어둡고 깊은 무의식의 지하 세계, 즉 '메타포'로 걸어 들어가게 됩니다.

 

불안전한 우리를 안아주는 , 하루키 색채가 진한 위로의 문장들

이 작품은 다른 하루키의 작품들과 같이 도대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전개 속에서도 작가의 깊은 통찰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문장들을 남겨주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문장들 때문에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재미가 있는 것이죠.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떤 인간이든 저 안쪽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잘 찾아내어, 혹시 표면이 뿌옇다면(뿌연 경우가 더 많은지도 모른다) 헝겊으로 말끔히 닦아준다

 

- 주인공은 타인의 얼굴을 그리는 초상화가로서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 노력합니다. 그저 비슷하게만 그리는 것만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상처 입고 결팝된 인간들에 대한 다정함을 품고 있습니다. 깊이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조금은 장난스러운 이런 문장들이 저는 좋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왕왕 있다는 말이죠. 그 경계선은 꼭 쉬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날 기분에 따라 멋대로 이동하는 국경선처럼요

 

- 하루키의 문학을 이해하려면 이 문장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보면 그 자체로도 잘 진행되던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왜 갑자기 이런 설정이 나타난 거지? 란 의문이 수시로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작가는 이러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고 싶어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습니다.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은 알 수 없는 위대한 비밀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완성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모든 사람은 언제까지나 미완성이야

 

- 끊임없이 흔들리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말입니다. 작가는 사람이 삶이 허무함에 잠식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완벽하지 않은 채로 흔들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단단한 위로를 건냅니다. '언제까지나 미완성이야' 이 문구가 마음에 콱 박혔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제가 뭐든 할 수 있다고 맏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는 거의 완벽한 인간이 될 거라 생각했지요. 세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장소에 닿을 거라고요. 하지만 쉰을 넘기고 거울 앞에 서서 발견한 것은 그저 텅 빈 인간이었습니다

 

- 백발의 젊은 부호 맨시키의 독백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춘 것 같아 보였던 젊은 부호 멘시키의 솔직한 고백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우리가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생의 씁쓸한 이면을 날카롭게 보여주며 제 마음에 작은 파장을 남겼습니다.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이 감정을 대부호 근처까지도 가지 못했지만, 나이로는 맨시키와 비슷한 오십 줄에 다가간 저도 약간은 느끼고 있기 때문이지요. 

 

 

내일은 내일이야. 오늘은 오늘 밖에 없어

 

- 거장이 던지는 이 뻔한 이야기도 위로가 되었습니다. 알 수없는 미래의 불안이나, 이미 엎질러진 과거에 대한 후회 대신, 지금 내 앞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일에 집중하라는 든든한 선배의 위로 같아지요. 이 문장으로 이 거대한 소설은 막을 내립니다.

 

 

상실과 방황, 그리고 새롭게 시작되는 삶

[기사단장 죽이기]는 갑작스러운 삶의 균열을 맞이한 한 남자가, 기묘하고 환상적인 예술의 세계를 통과하며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고 마침내 스스로를 회복해 나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고 어렵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크게 흥행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품에 언급되는 '난징대학살' 관련 논란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막상 읽으면 재미있고 흥미로운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는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루키의 몰입감 넘치는 필력을 느끼며 조금은 색다른 이야기에 빠져보고 싶은 분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 책이 두 권이라는 점. 아마도 한 번에 읽어 내려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은 미리 말씀드립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