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와 가짜 사이, 오늘도 우리는 헷갈리는 중
요즘 우리는 매일매일 헷갈립니다. TV 광고에 사람과 똑같은 AI 캐릭터가 등장해 사람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하고, 보정된 사진으로 만든 사원증은 '이게 누구인가' 하는 당혹감이 들게 하지요. 편집된 일상으로 뒤덮힌 SNS보며 내 삶을 저주하기도 하고, 온갖 거짓으로 엮여있는 가짜 뉴스들은 우리를 잘못된 곳으로 이끌어 가기도 합니다.
'혼모노, 本物(ほんもの)'는 '진짜'를 뜻하는 일본어입니다. 일본어를 조금 알고 있기에 처음 이 책의 표지를 서점에서 봤을 때, 이러한 사회현상에 대해 쓴 일본작가의 인문서적이라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하지만 서점에 갈때마다 계속 베스트셀러 순위를 갱신해 가는 이 책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고, 성해나 작가의 소설집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죠. 저 역시 겉모습만 보고 이 책의 '혼모노'를 알아채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 하지만 이 책은 저같은 얼뜨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열풍이 되어 서점가를 지배하게 되었죠.
결국 천재의 반열에 오르게 될 젊은 작가
성해나 작가님을 알게 된 것은 누군가의 추천으로 읽게 된 첫번째 소설집 《두고온 여름》 에서 였습니다. '이 작가, 누구야?'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글을 참 잘 쓴다고 생각했죠. 제가 읽어왔던 소설들과 결이 조금 다르다고 할까요. 조금은 파격적으로 사건과 인물에 접근하는 신선함과 매우 사실적인 배경과 스토리로 글에 몰입하게 만드었습니다. 박정민 배우가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된다'라고 한 추천사에 저도 100% 공감합니다.
성해나 작가의 특징은 다양한 소재를 익숙하게 다루는 '정교함'과 가슴이 섬찟할 정도의 '솔직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속, 영화 팬덤, 건축, 헤비메탈, 조형예술 등 각각 전혀 다른 세계를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매번 그 세계 속 인물들의 심리를 치밀하게 파고들어서, 인물의 상처와 불안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가히 천재적인 글솜씨라고 생각합니다.
'혼모노'란 무엇인가 — 진짜를 캐묻는 일곱 개의 이야기
이 책은 동명의 표제작 《혼모노》를 포함해 총 7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 소설집입니다. 각각 다른 인물과 사건을 다루고 있어 지루할 틈없이 매우 스피디하게 진행됩니다. 독립된 이야기들이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공통적인 부분이 있죠. 바로 굳게 믿어왔던 것이 사실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라는 '변화'에 관한 것입니다.
표제작 《혼모노》 는 무속을 소재로 합니다. 30년 차 박수무당인 문수는 자신이 오랫동안 모셔온 신령 '장수할멈'이 어느 순간 자신을 떠났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때마침 이웃으로 이사 온 버릇없는 젊은 무당 '신애기'가 그 신령을 자신이 모시게 됐다고 말하면서, 문수의 믿음과 경력,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를 겪습니다. 중년의 문수와 젊은 신애기의 대립은 필연적인 세대 갈등은 물론 전통과 현대의 대립 등 강력한 변화의 조짐을 드러내줍니다.
또 하나 인상적이 었던 작품은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라는 작품이었는데요. 조금은 낯선 '팬덤문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화자는 유명 감독의 열성 팬으로, 팬들만 초대받는 비밀 채팅방과 오프라인 모임에까지 참여할 정도로 열심입니다. 그런데 그 감독이 촬영장에서 어린 배우를 함부로 대했다는 논란이 터지자, 마음 한구석에 의심을 품으면서도 여전히 그 감독을 옹호하느라 애를 씁니다. 좋아하는 대상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그 대상이 정말 옳은 사람인지에 대한 불안이 계속 충돌하는 것이죠. 작가님이 진짜 편덤에 빠진 경험이 있나 싶을 정도로 생생하고 몰입도가 높은 작품이었습니다.
'혼모노'는 과연 '진짜' 인가
생각해보면 '진짜'라는 것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내가 그렇게 믿고 거기에 약간의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이 추가되면 우리는 그것을 '혼모노'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진짜'는 아니자나요. 언젠가 그 믿음이 흔들리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면, 우리는 다시금 혼란에 빠지고 말껍니다. 그리고 금새 새로운 '혼모노'를 만드면서 같은 일이 반복되겠지요.
그런 사회적인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가벼운 에피소드들의 묶음은 아니라고 느끼게 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마술같은 글솜씨로 진짜처럼 느껴지게 하는 재주가 뛰어납니다. 너무 진짜 같은 내용들이 많아서 사실인지 아닌지, 작품의 배경이 진짜 존재하는 장소인지 몇 번을 검색하면서 보게 되었습니다. 문학적인 극사실주의라고 할 수있을 것도 같습니다.
오래 붙잡게 되는 책
사실 저는 책을 길게 보지 못하는 스타일입니다. 한 번 읽을 때 2~30분씩 몇 번에 끊어 읽는 타입이지요. 하지만 이 책은 한 번 붙잡으면 시간이 허락될 때까지 읽었던 것 같습니다. 저처럼 독서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장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지 않고, 사건의 배경과 인물들의 감정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전달하기 때문이지요.
무속과 같은 다소 낯선 소재도 이해하는데 필요한 정보가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져 있기 때문에 책을 읽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는 일도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짧은 단편들이지만 금새 몰입해서 읽게되는 이야기입니다. 너무 좋은 말만 써놨는데요. '진짜' 읽어보시면 제 말에 공감하게 되실 껍니다.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짧은 단편으로 부담 없이 소설 읽기를 시작하고 싶으신 분
- 잔잔한 이야기보다는 긴장감 있고 서늘한 느낌의 전개를 좋아하시는 분
- "요즘 화제작이 뭐지" 궁금하셨던 분
글을 정말 잘 쓰는 작가, 우리말을 아름답게 표현해 내는 작품을 느껴보고 싶으시다면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를 펼쳐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책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책리뷰] 찬란한 멸종_이정모 (0) | 2026.07.16 |
|---|---|
| [책리뷰] 천 개의 파랑_천선란 (1) | 2026.07.10 |
| [책리뷰] 기사단장 죽이기_무라카미 하루키 (0) | 2026.07.02 |
| [다섯줄 리뷰] 프랑스 아이처럼 (6) | 2025.07.18 |
| [다섯줄리뷰] 오십, 나는 재밌게 살기로 했다 (1) | 2025.06.26 |